2020학년도 1학기 방학식

더 어렸을 때는 내 나이 쯤 되면 매사를 능숙하고 멋지게 처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정작 그 나이가 되어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고 일의 순서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중요한 것을 놓치고 내 감정에 지나치게 휘둘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건 조금 부끄러운 일이다.

내가 언제나 옳다는 관점 – 내가 알고 저들은 모른다는 – 은 필연적으로 갈등으로 이어진다. 내가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내가 가르쳐야 할 학생도 올바르게 이끌어야 할 양떼도 아니다. 설령 진짜 내가 옳다고 해도 그런 방식으로는 무언가 바뀌지 않는다. 원래 그런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던 어떤 직업관에 개인적 트라우마가 더해져 교사는 어때야 한다는 기준을 정하고 거기에 끼워맞춘(혹은 늘려맞춘) 나를 표본으로 삼아 다른 사람들을 판단해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옳았는지 아닌지가 아니라 그 방식으로는 조직을 바꾸기 힘들다는 점이다.

나는 내가 맡은 학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내 방식을 다른 교사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인정받으려 들지 않는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불평이나 흠을 너무 들여다보지 않는다. 비교하며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가지지 않는다. 내가 부족한 부분부터 채운다. 여기부터 시작한다.

나에게는 없는 – 또는 없다고 생각하는 – 남들의 흠을 찾는 것은 너무 쉽고 중독적인 일이다. 남들의 흠을 찾으면 찾을 수록 나는 더 나은 인간이라고 착각하고 안도하게 된다. 너무 커서 모르는 척 하기 힘든 흠결이라면 반면교사로 삼으면 된다. 거기에서 내 존재에 대한 인정을 찾을 필요는 없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