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mark_border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죽림동 93

토요일 정오가 좀 넘은 시간 동생에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그래, 이제 가실 때가 되었지’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제 좀 쉬려고 했는데, 하필 오늘, 하는 조금 이기적인 생각을 했다. 9월 수시 접수기간이 이제 막 끝나 추석연휴에 한숨 돌릴 계획이었던 4일 연휴의 첫 날이었기 때문이다. 동생은 남편의 출근 때문에 일요일 아침에는 올라올 생각이라고 했다. 나는 월요일로 예정된 발인을 보고 올라와야할지, 일요일에 동생 부부와 함께 올라와야할지에 대해 잠깐 생각했다. 조금 귀찮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엄마는 생각보다 차분했다. 아마 외할아버지의 연세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리라. 나는 당연히 아버지가 차로 엄마와 함께 내려가리라 생각했지만 어머니의 반응을 보니 아버지가 운전을 하기 싫어하시는 눈치라 더는 묻지 않았다. 따로 내려가시겠다는 말씀에 급하게 버스터미널에서 여섯시 버스 한 장을 예약해드렸다. 조금씩 정신이 들었다.

나는 동생 부부와 함께 내려가기로 했는데, 그 결정에 곧 후회하고 말았다. 아버지가 엄마와 함께 내려가지 않을 생각이라면, 차라리 내가 모시고 가는 편이 더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엄마가 다시 전화해 교회차로 교회 사람들과 함께 내려가게 되었다고 버스편을 취소해달라 하셨다. 아버지가 교회에 연락하신 모양이다. 한국 교회는 이런 날에도 움직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 부부는 생각보다 늦었다. 기다리던 나는 저녁을 먼저 해결해야 했는데, 추석 연휴 첫 날이어서인지 문을 연 식당이 별로 없었다. 약 삼십분을 기다려 나온 순두부찌개를 가져온 주인 아주머니에게 나는 대놓고 싫은 소리를 했다. 마음이 급했고 사과 한 마디 없이 바쁘다는 티를 내는 모양새에 화가 났던 것이다. 아홉시가 넘어서야 동생 부부의 차가 집 앞에 도착했고, 나는 면허도 차도 없는 나의 생활 방식에 조금 불편한 구석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천까지 와서 나를 데리고 가는 동생 부부가 조금 늦은 것에 대해 차도 없이 얻어타는 내가 투정을 부릴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워낙 늦게 출발한 덕분에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시간은 열한 시가 넘어있었고, 식장에는 외삼촌 두 분과 엄마, 이모들 몇 분 밖에 없었다. 그나마 이모들과 엄마는 이제 외할머니댁에 자러간다고 했다. 내가 식장에서 밤을 새겠다고 하니 외삼촌들은 그럴 필요 없다고, 상주들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꽤나 오랜만에 겨우 보게 되었다며, 웃음을 보였다.

둘째 날에는 전날 만나지 못했던 친척들과 사촌들을 모두 만날 수 있었다. 동생 부부는 아침 일찍 서울로 향했다. 외할아버지께서 평소에 장례 절차를 간소하게, 또 가족들끼리만 하자고 하신 때문인지, 아니면 추석 명절이어서인지 문상객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덕분에 친척들끼리 이야기 할 시간이 많았다. 엄마는 9남매 중 넷째인데, 위아래로 아들(외삼촌)이 하나씩 있다. 나머지는 전부 딸. 이야기야 많이 들었지만 정작 만나서 얼굴을 보고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모부들이 누구고, 어디에 살며, 누가 누구의 아들이고 딸인지 구분하는데 족히 반나절이 걸렸다.  나는 언제 만났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또래(또래라고 해봐야 대부분 20대인) 사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도 그들도 이야기하는 것 말고는 다른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이다.

3일째 되는 아침은 조금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아침을 식장에서 일찍 먹고 식장을 정리하고, 예배를 드린 후 바로 발인이 진행되기 때문이었다. 나는 생각하고 있지도 않다가 흰 장갑을 끼고 장지에서 이모부들과 함께 운구를 하게 되었는데, 외할아버지가 너무 가벼워 조금 놀랐다. 하관을 하고 취토(取土)를 할 때 이모들이 우는 모습에 나도 조금 따라 울었다. 그래도 가족들이 많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배 중에 시끄럽게 떠들며 준비된 플라스틱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던 동네 사람들이 조금 야속했지만 나 말고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예배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고, 유족들과 발인에 참여한 교인들, 동네 사람들, 장지의 일꾼들을 위해 식사가 마련되어 있지만 도통 식욕이 생기지 않았다. 나는 이모들과 사촌들을 위해 식사테이블을 준비하고는, 포크레인이 취토 후의 무덤에 흙을 퍼다 올리며 먼지를 날리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장지는 큰외삼촌 댁과 무척 가까웠다. 집에서 2분 정도 걸어나오면 있는 작은 언덕이 장지였던 것이다. 이모들과 외삼촌들은 다같이 모여 빌렸던 상복을 정리하며 옛날 이야기를 했다. 이모 중 한 명이 차가운 커피를 만들어 돌렸고, 또 누군가 다함께 사진을 찍자는 제안을 했다. 워낙 사람이 많다보니 의견이 전달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남자들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올라갈 버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자 겨우 마당에 다 모일 수 있었다.

DSLR 카메라 같은 게 없었기 때문에 사촌 중 한 명의 아이폰을 의자에 기대어 두고 타이머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고 나는 급히 인사를 드리고 터미널로 향했는데, 내가 탄 차가 후진을 하며 집이 있는 길을 빠져나올 때, 모두가 마당에서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꼭 전형적인 명절의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 같아서, 또 나에게 그런 가족이 있었나 싶은 생각에 마음 한 곳이 조금 먹먹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