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월엔 8일간 도쿄에 다녀왔다. 도쿄에 갈 때면 늘 요코하마에 들렀는데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도쿄에서 8일이나 볼 게 있냐 하지만 8일 동안에도 못보고 못하고 못먹고 온 게 너무 많다. 여행 얘기는 길어지니까 나중에 따로. 니혼바시의 한 호텔에서 TV를 보다 중국인이 원인불상의 폐렴에 걸렸다는 보도를 본 것 같다. 그 때는 그게 2020년의 전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2월에도 교토 여행을 계획했었는데 상황이 너무 나빠져 결국 취소했다. 우리 학교는 상황이 그나마 괜찮은 편이었는데, 겨울 방학이 시작하기 전 1월 초에 졸업식을 해버렸기 때문이었다. 2월에 개학과 졸업을 계획했던 학교들은 학사일정을 뒤로 미루느라 한바탕 난리를 치러야했다.

3월엔 집에서 가까운 곳(도보 10분)으로 학교를 옮겼다. 생애 첫 차를 받았다. 원래는 수원 출고장까지 가야했는데 확진자가 급증하며 탁송을 해줬다. 실은 이렇게 가까운 학교로 오게 될 줄 모르고 전년 8월에 계약한 차였는데, 차가 너무 좋아서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나에겐 과분한 차다. 3월이 다 지나도록 우리반 학생들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4월에도 마찬가지였다. 사전투표를 하고 투표일에는 꽃을 사서 청주에 윤철이를 보러 다녀왔다. 첫 장거리 운전. 성당 앞 주차장에서 울다가 렌즈가 빠져서 고생했다.

5월부터는 삐걱대긴 했지만 그래도 뭔가 돌아가기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학생들이 등교와 수업과 평가가 시작됐다. 차를 몰고 조금씩 움직여봤다.

6월 – 7월 – 8월은 여느 여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행히 예전 여름처럼 덥지는 않아서 마스크가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며칠 안되는 방학 중 하루를 골라 고성에 당일치기 드라이브를 다녀왔다. 물회만 먹고 바다를 보고 다시 돌아왔다. 광화문 집회로 확진자가 여기저기 퍼지기 시작했고 더는 돌아다닐 수 없었다. 며칠을 집에서 보내다 하루는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를 논스톱으로 한바퀴 돌았다.

9월 – 10월 – 11월도 비슷했다. 추석 연휴에는 하루 서울 나들이를 했고 한글날 연휴가 끼어있던 주말에는 대학에서 주최하는 워크샵을 핑계로 강릉에 다녀왔다. 활동하고 있는 진학지도지원단 활동의 일환으로 진학상담 컨설팅과 진학지도 강의를 다녔다. JTBC 주최 마라톤(10km)에 처음으로 참가했다. 물론 모여서 뛸 수 없으니 개인이 뛰고 기록을 제출하는 방식이었다. 처음으로 메달을 받아봤다.

12월엔 가슴이 답답해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결과는 이상이 없었는데 몇 차례 병원을 다니던 중 하루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는지 증상이 있으면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라는 연락을 받았다. 검사를 받았고 다행히 음성. 더욱 조심하자고 생각하게 됐다. 재택근무가 시작됐다. 8년 만에 신형 맥북(m1)을 구입했다.

코로나19는 끝나지 않았고 가까운 미래에 예전과 같은 방식(그게 뭘까)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괜히 심각해질 필요는 없지만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진정되더라도 우리의 삶의 방식은 예전과는 달라질 것 같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것이고,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해질 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2020년은 (아직 끝나지 않은) 변화의 시기가 아니었을까. 올해가 다 가지도 않은 지금 2020년을 어떤 해였다고 평가하기는 이를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어떤 것들은 분명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