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mark_border2013년 결산

‘근황’을 전하자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겠고, 얼마나 세세한 내용까지 전해야 좋을지 몰라 남들이 많이 하는 것처럼 2013년을 결산해보기로 함. 순위 매기기 놀이가 얼마나 무의미할 수 있는지에 대한 걱정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고.

 

1. 2013년의 영화 : 지슬(감독 오멸)

사람들이 흔히 묻는 “그 영화 재밌어요?”라는 질문에 맞는 대답을 찾기는 참 어렵다. 화자가 영화라는 context를 ‘재미있다’라는 형용사로 표현하고 싶어하는 것을 단순한 이야기나 플롯의 흥미도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지슬을 ‘재미있다’고 표현하기는 힘들 것.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를 쉽게 한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공감할 것 같다. 나는 적어도 그런 단어를 알지 못한다. 이동진의 평을 빌리자면 “어떤 영화는 그 자체로 숙연한 제의(祭儀)가 된다.”

나는 이 영화를 3월에 관람했는데, 보고 나오며 ‘올해 최고의 한국영화는 이 영화가 되겠구나’는 생각을 했고, 적어도 나에게는 그게 들어맞았다.

 

2. 2013년의 앨범 : Sviatoslav Richter : Rachmaninov, Tchaikovsky

영화의 경우, ‘2013년에 극장에서 개봉하고 내가 극장에서 관람한 영화’를 대상으로 했는데, 음반의 경우는 그렇게 하기가 조금 어렵다. 실제로 작년에 발매된 음반은 몇 장 사지를 않았으니까…

8월 일본여행에 가서 중고 CD를 몇 장 사왔는데, 그 중 가장 손이 많이 가는 것은 리히터가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1963년 연주. (실제로는 일본에서 중고로 산 가격이 우리나라에서 판매되고 있는 신품 가격과 거의 비슷했는데…)

굳이 작년 발매 앨범 중 고른다면 inside llewyn davis OST, daft punk의 random access memories.

 

3. 2013년의 장소 : 우리집, 씨네큐브, new york bar – park hyatt tokyo.

또 다른 포스트에서 언급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2년째 살고 있는 오피스텔의 계약이 만료되어 이사를 가게될 것 같다. 비록 빌린 장소였지만 내가 고른 집이었고, 또 이제는 곧 더 이상 지낼 수 없게 될 테니까.

씨네큐브는 뭐 설명이 더 필요한가 싶다. 요새 사람이 많아진 것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기로 함…

8월 일본 여행에서 들른 신주쿠의 파크하얏 최고층에 위치한 바 뉴욕. 내가 술맛을 잘 몰라 칵테일이 맛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다;; 바 이름이 좀 별로지만(뉴욕이 뭐야 뉴욕이…-_-) 분위기는 무척 좋은 편.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의 바로 그 바. 기회가 있는 분들은 꼭 한 번 가보시길 권함.

 

4. 2013년의 카페 : tailor coffee, botton.

역시 어느 쪽이 더 좋은가를 고르기는 어렵다. 블로그 같은데서 맛집 소개하는 거 별로 안좋아하는데-_-…

보통botton은 작은 공간이지만 그 나름의 아기자기함과 따뜻함이 있다. 바리스타님도 친절하신데다, 커피도 무척 맛있다. 용산구에서 이 정도 커피를 내는 곳은 이 곳과 원더커피 정도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만.

테일러커피tailor coffee의 플랫화이트를 처음 마셔보고는 작은 충격을 받았다. 이런 커피도 있구나, 하는. 플랫화이트 뿐 아니라 다른 커피들도 굉장한 수준. 주위 사람들에게 많이 추천했는데 다들 만족했음.

 

5. 2013년의 음식점 : cafe Suッkara

일반 음식점에 비해서는 가격이 약간 비싼 편이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쓰는 재료를 생각한다면 전혀 아깝지가 않다. 서울에서 몇 안되는 귀한 채식식당 겸 카페. 분위기도 무척 마음에 든다. 보통 혼자 가서 ㄷ자 모양의 바에 앉아 식사를 하고 책을 읽거나 랩탑으로 이것저것을 끄적이다 오곤 함.

서빙하시는 종업원분들이 무척 매력적이어서 가는 건 아니고요…

 

6. 2013년의 사건사고 : 자전거 사고 / 깁스

나라 안팎으로는 워낙 시끄러웠고, 개인적으로 가장 큰 사고는 자전거 사고였던 것 같다. 자세한 사고 정황은 생략하고, 왼손 주상골(scaphoid) 골절(아예 뚝 부러진 건 아니고 금이 갔다고)로 6주간 깁스를 해야했음.

혼자 사는데다 왼손을 (거의) 못쓰니 상당히 불편했다. 씻기도 불편하고 설겆이, 청소도 하기 힘들었음. 무엇보다 옷을 입는 것도 상당한 고역. 깁스의 크기와 굵기 때문에 스웨터 왼팔이 죄다 늘어났다. 셔츠나 블레이저는 거의 입지를 못했고(아예 왼팔이 안들어갔다).

다행히 지난 주에 깁스를 풀고 재활치료 중. 완전히 나은 건 아니고 특정 각도로 움직일 때는 아직 근육에 통증이 느껴진다.

굳이 하나 더 추가하자면 12월 28일에 있었던 총파업 집회 참여. 아니 제가 깁스를 한 채로 여기까지 가야겠냐고요 이 양반들아

 

7. 2013년의 책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色彩を持たない多崎つくると、彼の巡礼の年, 아파트 게임.

역시 2013년에 출판된 책을 많이 읽지 않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色彩を持たない多崎つくると、彼の巡礼の年 을 빼긴 어려울 것 같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 다자키 쓰쿠루를 읽으며 나의 삶과 생활을 돌아보기도.

박해천의 아파트 게임은 여러모로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현실적으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잿빛 현실에 대한 프롤로그.

 

8. 2013년의 인물 :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