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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02 : 거미




폭우와 강풍이 몰아쳤던 지난 주 어느날,
바람과 비가 물러난 오후, 관사로 돌아가는 길 한편,
나무 사이에 거미 한 쌍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거미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릴 적 아파트 뒷산에서 곤충채집을 즐겨했는데
커다란 사마귀도 맨손으로 잡았던 저이지만 거미만은... 채집하고 싶지 않았어요.
거미줄이라는 함정을 펼치고.. 약한 적이 걸리기만을 기다려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든다..
무언가 대단히 게으르고 비열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게다가 왜 다리는 필요없이 더 많은 거냐고요.. ㅜㅜ

어쨌든 그날 아침에 보았던 그 거미들도 커다랗고 반짝반짝 빛나는 집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낮동안의 강풍으로 오후에 보았을 때는 집이 거의 모두 망가지고 말았지요.

제가 본 그날 오후의 거미들은, 얼마남지 않은 얇은 거미줄 몇 올에 의지한 채,
열심히 집을 수리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동안 멈춰서서 그 거미 두 마리가 집을 다시 짓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항상 게으르게 거미줄 한가운데 거드름을 피우며 매달려 있는 것 같았던 거미가,
그렇게 바쁘게, 열심히 무언가에 열중하는 모습이 무척 새롭게 느껴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오늘의 폭풍으로, 아침 관사앞의 주차장은
은행나무에서 떨어진, 아직 짙은 녹색의 은행잎으로 가득 덮여 있었습니다.

작은 나무들의 밑둥이 꺾일 정도의 강풍이었기 때문에
역시 이전의 그 거미들은 어딘가 없어지고 말았더군요.
아마 거미줄과 함께 손쓸 새도 없이 날려가 버렸겠지요.

그 거미들에게 생각이 있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생각이나 감정이 있다면 - 아마도 그렇지 않겠지만 -
처음 집이 망가졌을 때, 무척이나 불평했을 겁니다. 슬퍼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포기하진 않았습니다. 집을 수리해서 결국은 예전보다 더 큰 거미집을 완성했어요.
장담하건대 그 거미들이 살아있다면 분명 다시 집을 지을 겁니다.

수차례의 폭풍과 강풍으로 집을 잃은 거미가 상심해서
집짓기를 포기하고 땅거미로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만일 그 거미들이 오늘의 폭풍에서 살아남았다면 - 역시 아마도 그렇지 않겠지만 -
그 거미들은 어딘가에서 다시 거미줄을 치고 자신들의 집을 만들게 될 겁니다.

그게 그들이 하는 일이니까요.








+ 추가

오늘 아침 - 그러니까 금요일 아침에 확인해본 바
한 마리는 무척 건강히 살아있었습니다. 집까지 지은 채로요.

그 강풍에 날아가지 않은 건지,
날아갔는데 거기까지 다시 돌아온 것인지(설마)

오후에는 이미 집을 완전히 완성했더군요.

살아있다면 분명 다시 집을 지을 것이라 확신했지만,
이렇게 금방이나,
또 그런 태풍을 겪고도 다시 그런 집을 완성한 것에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 저는 잘 지냅니다. 수시 원서준비로 무척이나 바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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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16 : 이해에 대한 오해misunderstanding about understanding





인용 #01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 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김연수, '세계의 끝 여자친구' 작가의 말 중에서









경험 #01

혼자 엄청나게 센치해진 목요일 밤,
sigur ros를 들으며 기분을 더하고 있는 나의 버스옆자리에는 몹시 취한 여자아이가 탔다.

그녀는 버스에는 무척 자리가 많았음에도 굳이 내 옆자리에 와서 앉았다.
나에게 영어로 대화가 가능하냐고 영어로 물었고
민트캔디를 권했으며 계속 짜증이 난다고 중얼거렸지만, 그나마 곧 잠이 들었다.

꽤 늦은 시간이었지만 부천까지 오는 데에는 한시간 정도가 걸렸는데,
그때까지 이 아이는 상체가 꺾여있는 채로 잠들어 버스의 흔들림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결국 내가 내릴 정류장에 다 왔을 무렵,
나는 여자아이를 깨웠고 여기가 어딘지 아느냐고 물었다.

내릴 정류장은 지난듯했다. 비는 이미 우산이 소용없을 만큼 쏟아지고 있었고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목소리를 크게 해야했다.

나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주인공을 떠올렸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현실세계는 소설이 아니다. 더구나 한국사회는.
그런 짓을 하다간 의도가 어찌되었든 간에 잡혀들어가고 만다.

나는 빗소리보다 더 크게 목소리를 내어 아직 술이 덜 깬 여자아이에게
집에 전화부터 하라고 했다. 이 아이는 엄마에게 혼이 날 거라며, 괜찮다고 했고,
나에게 폐를 끼친 것 같다며 전화번호를 물었기에 핸드폰에 내 번호를 남겨주었다.

나는 택시를 잡은 후 택시번호를 체크하고 택시가 떠나는 것을 확인했다.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같이 택시를 타고 갈 수는 없었다. 그 편이 더 이상해 보인다.


다행히 다음 날 오전 잘 들어갔다고, 죄송하다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무엇이 죄송하다는 것일까

나는 다른 일을 하다 결국 답장을 보내지 못했는데
전날의 일을 생각하며 내가 그렇게 술을 마셔본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잊고 싶은 게 많았는지도 모른다.
회사일이 힘들었을지도 모르고, 남자친구와 심하게 다투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키우고 있는 강아지의 배변훈련이 잘 되지 않는다던가...


나도 금요일에는 술을 조금 마셨다. 모두가 처음 만나는 사람들.
아니 마셨다는 표현보단, 술자리에 '참석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거의 마시지 않았으니까. 술을 마시기보단 3차에 걸친 술자리의 안주를 마시고 온 것 같다.

집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걸었던 금요일 밤의 강남역은 무척이나 붐볐다.
하지만 내가 아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고 나를 아는 사람들도 아무도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오는 길은
밤 치고는 너무 더웠고 바람조차 불지 않았다.

나는 음악을 끄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집까지 걸었다.









경험 #02

1년여 만에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상처를 준 사람이 상처를 받은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극복할 줄도 알아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나는 또 한 번의 상처를 받았다.

어떤 사람들은 - 특히 상처를 준 사람들은 - 너무나도 쉽게 잊는다.
자신이 어떤 일을 했는지, 자신이 저지른 일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되었는지.
어쩌면 어떤 사람들만이 아닌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의 잘못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 소설가의 말처럼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른 채, 당당히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당당히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면
화가 나기보단 슬픈 일이다.









인용 #02

"우리는 모두 헛똑똑이들이다.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사실들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 대부분은 '우리 쪽에서' 아는 것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들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런 처지인데도 우리가 오래도록 살아 노인이 되어 죽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어리석다는 이유만으로도 당장 죽을 수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 삶에 감사해야만 한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가 사랑했던 나날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해되기만을 기다리며 어리석은 우리들을 견디고 오랜 세월을 버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같은 소설가. 같은 제목의 단편 중에서.









생각하기 #01

김창완밴드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 섯을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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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18 : spitz - ほうき星



01
for a few days
the heat of the midday sun was so fierce
that i thought it was summer already

then it rained
getting everything wet

and the humidity wore me down









02
twenty-eight, twenty-nine, thirty.
or
twenty-nine, thirty, thirty-one.
however you call it

feels like i have been flying away
this precious part of my life
i get to spend in ildong

i know it's not an ideal place to start
but is it that bad?

is that what i really want?









03
everything's been sort of okay. i don't know
it was not that bad
i just couldn't complain

there were always people who were less fortunate than i was
there were bad situations where i could have been

still i can't feel satisfied completely though
and keep thinking something is missing









04
sometimes
life seems to be full of beautiful surprises and amazing encounters
which makes me so sad that i cannot live it up to feel and see them all

but other times
life feels so frustrating
for so many reasons









05
feel like i'm stuck in a certain way

to do what i really want to do
i have to let go of what i'm holding

the more i hold
the harder to let them go

and i think
a small part of myself knows
that i won't let what i'm holding go

maybe it's time for me to look back on

i won't lost myself









06
i turned on my ipod
a band started singing



錆びついた 扉が はじめて開くよ
a rusty door finally opens
僕らは ほうき星 汚れた秋空
we are comets from tarnished autumn sky


靜かに近づいて 淚を乾かした
quietly went near and dried the t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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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27 : Alain de Botton : A kinder, gentler philosophy of success



A kinder, gentler philosophy of success
Alain de Botton
(한국어 번역제목 : 보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공철학 / 한국어 자막 링크)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TED.com 강의.

현대인들에게 성공과 실패가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또 그 성공이라는 개념이 정말 우리가 원하던 것인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일부 발췌.








*

a snob is anybody who takes a small part of you
and uses that to come to a complete vision of who you are
속물인 사람은 당신의 일면만을 보고 당신 전체를 판단하는 사람입니다

and the dominant kind of snobbery that exists nowadys is job snobbery
그리고 요새 존재하는 속물근성 중 가장 흔한 종류는 직업적 속물근성이지요

to opposite of a snob is your mother
somebody who doesn't care about your achievements
but unfortunately, most people are not our mothers
속물의 반대는 바로, 당신의 성취로만 당신을 판단하지 않는, 당신의 어머니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모든 사람이 우리의 어머니는 아니지요.





envy, it's a real taboo to mention envy,
but if there is one dominant emotion in modern society, that is envy
and it's linked to the spirit of equality.
시기를 언급하는 것은 금기입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두드러지는 감정중 하나를 들자면, 바로 시기인데요
시기는 '동질감'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when you can't relate to somebody, you don't envy them.
the closer two people are, in age, in background,
in the process of identification, the more there is a danger of envy.
which is incidentally why none of you should ever go to a school reunion
만일, 당신이 누군가에게 공감할 수 없다면, 그들을 시기하지도 않습니다.
두 사람의 연령과 배경이 유사할 수록,
서로를 비교하는 과정에서 시기의 가능성이 커지게 됩니다.
바로 그것이 동창회에 나가면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웃음)


there is a spirit of quality, combined with deep inequalities
which can make for a very stressful situation
뿌리깊은 불평등과 얽혀있는 평등의 정신이
때로는 무척 힘든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there is a real difference between an unfortunate and a loser
and that shows 400 years of evolution in society
and our belief in who is responsible for our lives
it's no longer the gods, it's us. we're in the driving seat.
that's exhilarating if you're doing well,
and very crushing if you're not.
'불행한 사람'과 '실패자'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으며,
이것은 400년 사회진화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 대해 누가 책임이 있는지에 대한 우리의 믿음 역시 변했습니다.
그건 더이상 신이 아니지요.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가 운전석에 앉아 있는 것이지요.
만일 당신이 잘하고 있다면, 무척 기쁜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무척 절망스럽겠지요.


it leads, in the worst cases, in the analysis of a sociologist
like emil durkehim, it leads to increased rates of suicide.
there are more suicides in developed individualistic countries
than in any other part of the world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이 분석했던 것처럼,
이것은 때로 최악의 경우에 자살률의 증가로 증명되기도 합니다.
발달된 개인주의 국가에서 다른 어떤 국가보다 자살률이 높다는 사실처럼요.


and some of the reason for that is that people take what happens
to them extremely personally.
they own their success, but they also own their failure
그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이 자신이 겪게 되는 일을 지나치게 개인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그들은 그들의 성공이라는 경험을 '소유'하게 되죠.
하지만 마찬가지로 실패의 경험 역시 '소유'하게 됩니다.





i'm drawn to a lovely quote by st.augustine in "The city of god"
where he says, "it's a sin to judge any man by his post"
in other words, hold your horses when you're coming to judge people
you don't necessarily know what someone's true value is that is an unknown part of them
and we shouldn't behave as though it is known
성 어거스틴의 'the city of god'에 언급된 멋진 인용구가 떠오르는데요
그는 "한 사람의 직업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죄악이다" 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을 성급히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진정한 가치를 알지 못합니다.
그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분이고, 우리가 마치 그걸 아는 양 행동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what i think i've been talking about really is success and failure
and one of the interesting things about success
is that we think we know what it means
결국 제가 말씀드리는 건 성공과 실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성공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우리가 '성공'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if i said to you that there is somebody behind the screen
who is very very successful, certain ideas would immediately come to mind
you would think that person might have made a lot of money
achieved renown in some field
만일 제가, 이 스크린 뒤에 누군가 무척이나 성공한 사람이 있다 말했다고 칩시다.
몇가지 생각이 떠오르지요? 아마 당신은 누군가 돈을 많이 벌었거나,
어떤 분야에 있어 널리 알려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될겁니다.


and the thing about a successful life,
is a lot of the time, our ideas
of what it would mean to live successfully, are not our own.
they are sucked in from other people

성공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대부분의 경우 그 '성공'이라는 개념은 우리 자신만의 것이 아닙니다.
그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주입'된 것이지요.


and we also suck in messages
from everything from the television, to advertising to marketing, etc.
these are hugely powerful forces
that define what we want, and how we view ourselves.
우리는 메시지를 '주입'받습니다. TV, 광고, 마케팅 등 모든 것에서요.
이들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정의하고,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는 방법을 정의내리는 강력한 존재입니다.





so what i want to argue for,
is not that we should give up on our ideas of success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공에 대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but we should make sure that they are our own.
we should focus in on our ideas
and make sure that we own them
that we are truly the authors of our own ambitions.

하지만 우리는 그 성공에 대한 생각이, '우리 자신의 것'인지 확실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생각에 초점을 맞춰야하고, 우리 자신이 그 생각을 '소유'하고 있는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야망이, 우리의 목표가 정말로 우리 자신에 의해 쓰여졌는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because it's bad enough not getting what you want
but it's even worse to have an idea of what it is you want
and find out at the end of a journey
that it isn't, in fact, what you wanted all along.
왜냐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비극인데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고 생각했다가,
이 길의 끝에서, 우리가 정말 원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우리가 정말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보다 더 큰 비극은 없을테니까요.










*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한 번은 나의 무지에서 비롯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이렇게 공부해서 졸업하고 뭐할래. 근처 마트에서 캐셔할거냐?"

다행히 아이들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했고,
그 발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학생들은 없었지만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해지고 손발이 오그라든다-_-
(혹시 그 당시 상처를 받은 학생들이 있다면 지금 이 자리를 빌어 정중히 사과한다)

초라한 변명을 하자면, 그런 발언(비슷한 발언이라도) 해본 사람이 있다면
아마 그런 사람(나 포함)들은 아마도 그러한 사회에서 자랐고,
자라면서 그런 사고방식을 주입받은 사람일 것이다.






현대 한국 사회에 있어 성공이란 건
사실 측정가능한 - measurable - 잣대이다.
그것도 꽤나 정확하게.

학력 - 재산 - 집안배경 - 직업 - 외모
모두 측정가능하며,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점수화되기도 한다.
순위마저 매길수 있는 것이다.

이런 가치관이 있다는 사실이 슬픈 일은 아니다.
정말 딱한 일은, 이런 가치관이 사회 전반에 걸쳐 주입되며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내재화unconsciously internalized된다는 것이다.


나조차도 그렇다. 이 강의를 보며, '이 화면 뒤에 있는 성공한 어떤 사람'을 떠올리며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워렌 버핏을 떠올렸으니까.
(게이츠나 버핏의 자선사업활동 때문에 그들이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이 성공했다는 관념자체는, 결국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인 성공에 초점이 맞추어져있지 않은가)

우리가 생각하게 되는 '성공'의 카테고리에
경제적인 성공, 직업적인 성공 말고 다른 것이 있었나 돌아보게 된다.


x축을 경제력, 혹은 우리사회에서 말하는 '직업의 서열'이라 하고, y축을 행복지수라 하자.
x축이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해서, 그래프가 세로로 반드시 올라가야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사회라면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 경제력과 행복이 높은 상관관계를 지니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인가.

문제는 우리는 그렇게 가르쳐왔고(배워왔고),
또 지금도 그렇다고 가르치고(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보태주는 것 하나 없이 입으로 떠드는 건 쉬운 오지랖넓은 사람들과
사람의 일면을 가지고 그 사람을 완전히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또 자신들이 살아온 그런 딱한 인생을 자식들, 심지어는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강요하는 사람들과
그런 가치관이 대물림되며 역시 딱한 인생을 살아나가는 가엾은 사람들

어느 사회에나 이런 사람들은 있겠지만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주류가 된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을 무시하기는 쉽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또 그런 편견들을 비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런 비난의 손가락이 나를 가르키게 된다 할지라도)
단지 그것을 못본 척하고 지나면, 결국 그런 편견과 그런 사람들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계속해서 주류로 자리잡아나갈테니까)

사실 나도 위에 명시한 그런 부류에서 100% 배제되어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도 내 인생의 자랑스럽지 못한 몇몇 순간에는, 또는 어떤 기간에는, 혹은 아직도, 심지어는 미래에조차도
그들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아는가, 그걸 깨달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옳은 방법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가
그런 편견들에 맞서볼 생각이 있는가


이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사회에서 가장 가엾은 희생자들은 학생들일지도 모른다.

때로 다행스런 경우에는, 학생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성공이
우리 사회가 '성공'이라고 여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이지만
(이 경우에도 학생들이 그 성공을 '진정으로 원하는what they really want' 것인지,
그 성공의 관념이 '주입된internalized' 것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남는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학생들이 원하는 성공의 잣대와 사회의 그것이 일치하지 않을 때)
아마 학생들은 좌절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

사실 교실에서 내가 했던 '실언'과 관련해,
그 학생들에게 그 발언과 관련해 후에 사과를 했던 일이 있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던 너희들이 행복하면 그 무슨 상관이겠냐고.
남들이 뭐라하던, 너희들이 하고 싶은 일을, 전심을 다해 하라고.
(물론 뒤에 현실적인 조언을 덧붙여야하는 내가 싫긴 했다. 하지만 어쩌겠어...ㅜ_ㅜ)


그 학생들에게
이 강의를 들려주고 싶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
이 사회보다 더 나은 사회에서,
그들이 행복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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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14 : strawberry swing



*
sometimes i feel certain type of feeling
that is hard to explain by the words that i have right now
but the fact i can't explain it properly
doesn't mean that it doesn't exist.

it's not about the pitifully small vocabulary i have,
but about the fact that it exists.









*
one of the reasons people misunderstand, fight, even despise each other is
that at the very moment, they do not have the ability to choose words
that they want to use to express themselves precisely.

and that's the very reason people understand each other,
or at least pretend to understand, when they communicate using incorrect words.









*
it doesn't matter whether we are using wrong, incorrect words or not.
what really matters is that some people understand each other,
even when they don't have the word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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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28 : Act 3, Chapter 2.




01
이맘 때의 일동에는 밤이 일찍 찾아든다.

8교시 보충수업을 끝내고, 아직 날이 밝았던 시간에 관사에 들러
간단히 씻고 분리수거거리를 가지고 나와보니
벌써 해가 완전히 져 주위는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다시 학교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나는 발밑을 살펴야 했다.







02
이 곳에서의 생활은 꼭 군대와도 같다고 느낀다.

주중의 일과중에 관리자의 눈치를 보며 열심히 치이고
주중의 일과후에도 역시 또 관리자의 눈치를 보며 치이고
주말에 하루정도 집에 다녀오는 일과는

일요일 저녁 외출을 마치고 귀대하는 부사관들이나 장교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단지 군복을 입지 않고
거수경례를 하지 않는다는 것 뿐







03
요새 나에게 여러가지 형태로의 자극이 있었다.

지금 이대로 좋은가, 3년 후에도 이런 모습으로 좋은가,
라는 식의 의문이 들었다.

사실
학생들에게 지금의 생활에 만족해서야 되겠느냐는 잔소리로 시작한 이 의문은
무언가에 강하게 부딪힌 것처럼 다시 나에게로 되돌아왔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활이
나의 인생의 목표였나

아니라면
내 목표를 위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라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가장 중요한 의문에 대해

내 자신에게,
혹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당당히 내놓을 수 있을 만한
답을 나는 아직 가지고 있지 않다.







04
타인을 납득시킨다는 것 - 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한정된 시간안에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이 완전히 그른 것이 아님을 인정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느낌을 이해할 수 있는 형태의 언어로 전달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허락된 능력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때때로 사람들은 입을 닫아버린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친절이 환영받지 못하는 참견이 되어버리고
더 나은 대안의 제시가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보는 것보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더 편하고
덜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리라.


그렇기 때문에라도 더 이야기해야 하고, 납득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 비록 실패하더라도, -
나는 알고 있다.







05
또 하나의 챕터chapter가 끝나려고 하고 있다.

그 다음에 또 다른 챕터가 나올지, 새로운 막act이 나올지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06
"A weak man has doubts before a decision. A strong man has them afterwards."
- Karl Kra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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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19




0.
토퍼topher가 대학원 입학차 미국으로 출국했다. 10월 초.
솔직히 오래 만났던 친구는 아니지만 정말 아쉽다.
말이 통하는 몇 안되는 친구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1.
새로 보기 시작한 미드 두 개.

the big bang theory :
nerd들의 이야기. 어떤 면에서는 loser들이라 할 수도 있는데
솔직히 꽤 깊은 수준의 공감을 체험하고 있다-_-
(레너드가 제일 좋다. 페니 예뻐서 계속 봄-_-. 쉘던은 짜증나)

the office :
시즌 2 초반까지만 해도 내가 이걸 왜 보고 있나.. 했는데
지금은 한 에피가 끝나면 반사적으로 다음 에피를 클릭하고 있다
추석 때 시작했는데 벌써 시즌 3 다 봐감;;


이것 말고는 없다 다행히도

이외에도 크마 + csi lv/mi/ny + how i met your mother 진도 매주 따라잡고 있 음.




2.
옷사느라 돈ㅈㄹ를 하고 있음.

다행히 예전만큼 비싼-_- 옷을 덜컥덜컥 사제낀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내가 필요한 것보다 조금 많이 사고 있다는 생각은 든다.

필요없거나 안입게되는 옷들은 조금씩 팔고 있다.
구입한 제품들에 대한 리뷰는 차차




3.
2009년 중간점검 - 중간점검이라고 하기엔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 을 해보자니
꽤나 평탄하지 않은 한 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physically / mentally / emotionally)

그리고 내가 그런 것들을 핑계로 무척 게을러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배불뚝이에 / 정신적으로 나태하고 / 감수성조차 없는 아저씨가 되는 건
순식간일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아저씨니까)

지금까지
'남들 신경쓰지 않고 내 페이스대로 즐겁게 살자'는 생각을 해왔는데
지금의 나는 그걸 뭔가 삐뚤어진 어린아이처럼 내 좋을대로만 해석하고 있는 건 아니었나.




4.
뭐 대단한 생활이라고 여기에 만족해있나
할거면 더 잘해보자
do not be satisfied with yourself
desire to exc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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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724 : 초식남, 그리고 88만원 세대




01

'초식남'이 화제가 되며
주위 사람들 몇몇으로부터
간혹 초식남이 아니냐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간단한 테스트 몇 개.

1. 격투기가 왜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 YES. 격투기는 1분 이상 본 적이 없다.
선수 이름도 모르고 K1과 프라이드와 UFC의 차이도 모른다.

2.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쓴다
- 이건 글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외모적으로 볼 때는 초식남이 아닐지도.
예쁘거나 과감한 옷차림을 즐기지는 않는다. -_-
주위 친구들에 비해서는 옷에 대한 소비비중이 큰 편.

3.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 YES. 일 때문에 하루에 내 시간을 갖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받고
때로는 초조해 진다. 차라리 잠을 줄여서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4. 여자와 단둘이 밤을 보내도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 NO. 우선 여자와 단둘이 밤을 보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데..
어쨌든 그런 상황이 온다면.. 아니 남자로서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아무 일도 하지 않을 수 있지?
(물론 그게 좋아하는 여자라면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라면 나는 초식남이 아니다-_- 왕성한 육식이라규 어흥


초식남이라고 하면 자기일에도 열심이고 미소년이지만
여자들의 유혹에는 쉽게 넘어오지 않는 그런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네가 무슨..

이라고 생각하신다면 할 말은 없지만..;







02

일단 초식남에 대한 위키백과의 정의.
"기존의 '남성다움'(육식적) 을 강하게 어필하지 않으면서,
주로 자신의 관심분야나 취미활동에는 적극적이나 이성과의 연애에는 소극적인 남성을 일컬는다"



아베 히로시가 출연했던 '결혼 못하는 남자結婚できない男'를 보며
나는 저렇게 사는 것도 멋지지 않아? 라고 생각했었다.
능력이 있다면 말이지.

그리고 어떤 점에 있어서는
- 대인관계에 서투르고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것, 일에 있어서 괴팍하거나 까칠한 것 -
나와 무척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렇다면 나는 초식남인가.







03

간단한 테스트에 나타난 것과 같이,

어떤 면에 있어서 나는 초식남이다.
(이 고백이 나에게는 무척이나 낯뜨겁다. 무슨 게이-_-라고 고백하는 것도 아닌데..)

아마 그 이유는 지금 '초식남'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지금 방영되는 한국판 결못남의 지진희라던가(나는 이 드라마는 한번도 못봤다)
그 전의 F4스러운 꽃미남들이기 때문에

그 샤방샤방하고 준수한 이미지와
실제 나의 이미지와의 격차를 인지하는 데에서 나오는 부끄러움이리라.
(그러니 그에 대한 비난은 삼가해주셨으면 한다-_-)

나는 그런 의미에서 나와 그들이 비슷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 우선 그다지 닮고 싶지도 않고, 닮고 싶다고 해도 그게 내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니니 -

지금 대부분의 초식남들 - 겉만 번지르르한 그런 사람들 말고 -은
본인의 의지로 초식이 된 것이 아니라,
사회가 그렇게 만든 것이라 생각한다.







04

기존에 초식남이라는 용어가 어떻게 만들어졌던지간에,
언론과 연예계가 지금 그 '초식남'이라는 용어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던지간에,
중요한 것은 70년대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사회,경제적 상황이 만들어 낸
하나의 사회현상이라는 것이다.

이는 결론적으로 우석훈 교수가 언급한 88만원세대와도 맞닿아 있고
얼마전 방영된 초식남 관련 다큐(그것이 알고싶다)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일본에서 출간된 '30대 미혼남 - 결혼하지 않는 것인가? 할 수 없는 것인가?'라는 책의 작자는
일본에서는 버블경제의 혜택을 받은 지금의 4,50대 기성세대들과
지금의 2,30대간의 차이를 지적한다.

지금의 2,30대는 열심히 일하지만 기성세대만큼 벌지도 못하고
일정한 직업을 구할 수도 없고,
그리고 결혼이란 건 남자가 돈을 벌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아마도 지금의 남자들은 결혼이 어려울 것이라고.







05

이는 우리나라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마 어떤 면에서는 더 심할지도 모른다)

우교수가 그의 책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지금 기성세대들은 지금의 2,30대들이 겪는, 겪어온, 앞으로 겪어야 할
치열한 경쟁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 경쟁이, 자신들도 다 거친 것이고
열심히 하면 누구에게나 다 기회가 온다고 생각하며, 누구나 다 취업할 수 있다 생각하며
낙오되는, 또는 경쟁을 아예 포기해버리는 젊은이들을 야망이 없다고 비난한다.

지금의 유복한 기성세대들은 정말 열심히 일했다.
열심히 일했기에 지금의 부와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다르다.
지금 세대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후천적인 노력만으로는
지금 기성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지위나 성공을 얻기 힘들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열심히 스펙을 키워 취업하려는 지금의 대학생과
비교적 쉽게 취업할 수 있었던 기성세대들과는 상황이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기성세대가 일궈온 민주화나 경제성장의 가치를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파이를 다 차지하고 큰 의자에 편히 앉은 채,
어 파이가 줄고 있네 그럼 내가 좀 더 많이 먹어야지
여기까지 올라와봐라, 올라오면 남는 거 줄게 하는 식의 경쟁만 부추기고 있는 행태는
가진 자로서, 그들이 가져야할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06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많은 남자들은 초식이 되어 간다.
가장 먼저 지켜야 할 것이 직업과 생계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이해해주지도 못하는 여자들에게 시간과 돈을 쓰느니,
또 그들에게 상처를 받고 상처를 입히느니
차라리 그 시간을 나를 위해 쓰겠다, 고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이해해야 할, 사회에서 관심을 가져야할 초식남은
부모에게 부를 물려받아 사는 걱정 없이
번지르르 한 낯에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시크한 미소년들이 아니다.

자신에게 돌아올 파이가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들에 나가 풀을 뜯고 있는 그런 초식남들이다.

전쟁과도 같은 경쟁을 뚫고 취업했지만,
바뀐 사회와는 별개로 한국사회의 결혼적령기 남성에게 기대되는 전통적인 가치 -
즉, 경제력이라는 이름의 스펙을 충족시키지 못하기에
결혼하지 못하고(않고) 있는 남성들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기성세대와 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는 그런 사람들.








07

물론, 남녀평등의 보편화와 여성들의 사회진출기회가 넓어진 것과는 별개로,
현대사회에 있어 여성들의 취업상황이 남자들보다 더 좋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취업문이 좁아질 수록 여성 구직자들에게 더 불리하다는 기사를 본 것 같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이
사회의 기본 단위가 되는 가정을 꾸밀 때, 즉 결혼하게 될 때
아직까지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기대되는 경제력과, 남성들에게 기대되는 경제력의 차이가 크다는 것이
초식男이 더 이슈와 문제가 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건어물녀, 스위치녀 - 는 이와 조금 다르다.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함)

예를 들어
좋은 직장에 아파트까지 준비된 남자와 결혼하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여자는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것.







08

그렇다면
Q1. 나는 초식남인가
Q2. 나는 결혼하지 못하는 것인가 결혼하지 않는 것인가


A1. trick question. 초식남이라는 정의 자체가 분명치 않다.
A2. 이건 둘 다-_- (아니 이제 막 서른이 되었는데 결혼이라뇨)







09

혹시나 이 포스팅으로 불편함을 느끼신 분들이 계시다면
사과드립니다.

사실은 저도 들에서 풀뜯고 있는 중이에요-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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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27 : THANK YOU




어느 토요일 오전
잠실역에서 내려 석촌호수까지 걸었다.

약속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고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에 상점들이 아직 개점하지 않아
마땅히 시간을 보낼 곳이 없었다.

거리는 한산했지만
공원은 운동하는 사람들로 조금씩 채워지고 있었다.

무거운 가방을 발밑에 내려두고
호수가 수풀사이로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학교, 친구, 가족.

있었던 사실들의 나열은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다
내가 변변치않은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될테니까

나는 내 길지 않았던 인생의 어떤 시점부터에는
내가 무척 긍정적인positive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렇지는 않았던 같다.

긍정적이기보단 순진했다naive 랄까
세상을 너무 쉽게만 생각해왔던 것 같다

그리고 그걸 이제야 깨닫는다.







내가 서른이 되면서 가장 두려웠던 일은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

구겨진 티셔츠, 해진 청바지와 빨지 않은 스니커즈를 멀리해야한단 뜻이 아니라
그저 그렇고 뻔한 '기성세대'가 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청바지를 멀리하게되고 스니커즈 대신 구두를 신어야 되는 것이 두려웠던 게 아니라
내가 십대였을 때 그토록 증오했던 꽉 막힌 사람이 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심지어 나는 내가 열다섯엔가에 '나는 절대로 꽉 막힌 어른이 되지 않겠다'라고
내 방에서 스스로 맹세했던 것까지 기억한다)







순진했던 데에 대한 변명을 하자면
그게 전부다.

이 사회에는 분명히
비합리적이고 불공평한 관념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과 싸워볼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그 관념이 정의롭고 합리적이라 여기며
그 관념에 맞는 생활패턴을 만들어 간다.

나 자신도 내 인생과 시간을 바쳐가며 그 관념과 싸워볼 생각은 없다.
우선 이길 자신도 없고,
싸워보고 싶어도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부터 감이 잡히질 않으니까.
그리고 솔직히 무엇보다도 나는 내 시간을 그런데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A. 사람들이 나를 그 관념의 잣대로 잰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B.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이 나를 그 관념과 싸우지 않는다 해서
그들의 잣대로 나를 잰다면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일게다.


가끔 괴로운 것은
1. 이해해주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마저 A 혹은 B의 이유로
나에게 실망하는 것.

2. 내 자신이 그 관념의 잣대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이대는 역할을 해야할 때.
(ex. 공무원으로서. 학교의 일개교사로서)







그 토요일 아침
호수가 보이는 평화로운 공원벤치에서 생각했던 건


즐겁게 살아야겠다는 것이었다.


분명 어디에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그들보다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내 나름의 복수일지도 모르니까

(짚고 넘어가자면 여기서 복수revenge라는 단어가 적절한 것 같지는 않다..
써 놓고 보니 그들them이 누구인지도 잘 모르겠고..
그래도 제가 무슨 말 하는지는 대강 아시겠지요)


내겐 그래도 아직 감사할 것이 너무도 많고
내가 가지지 못한 무언가를 바람으로써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하찮게 여기고 싶지 않다.

THANK YOU FOR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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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421 : life



"... we get to think of life as an inexhaustible well. Yet everything happens only a certain number of times, and a very small number, really. How many more times will you remember a certain afternoon of your childhood, some afternoon that's so deeply a part of your being that you can't even conceive of your life without it? Perhaps four or five times more. perhaps not even that. How many more times will you watch the full moon rise? Perhaps twenty. And yet it all seems limitless."

paul bow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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