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로그에 글을 쓰자니,
거의 아무도 오지 않는 빈 집에 들어와 먼지를 털고 있는 기분입니다.
*
저는 예전부터 건물을 좋아했습니다. 건물을 좋아한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하실지도 모르지만, 좋아했습니다. 일본으로 여행을 갔을 때, 니시신주쿠의 고층빌딩을 눈앞에서 보며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느낌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답답함보다는 오히려 황홀함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아, 그렇다고 제가 무슨 변태라던가 건물덕후-_-는 아니고요, 그냥 인간이 이렇게까지도 높은 건물을 수도 없이 지어놓았구나, 그런 종류의 감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고층건물들은, 아무도 없는 밤에는 꼭 대형 로봇으로라도 변신할 것 같지 않나요? 아니라구요...? )
꼭 고층건물을 좋아하는 건 아니고, 오래된 연립주택이라던가, 빌라들도 좋아합니다. 아파트보단 이런 쪽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예쁜 단독주택이나 대저택 같은 건 보기 힘드니까, 제쳐두고요. 길을 가다 해가 잘 들고 조용한 연립주택이나 빌라를 보게 되면, 이런 곳에서 사는 건 어떨까 하고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평일 오전, 모두 출근하고 조용한 주택가, 볕이 잘 드는 마루, 세탁기가 조용히 돌아가는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넓게 트인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 점심 준비를 하는 옆집에서 들리는 칼질소리,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카레 냄새... 뭐 그런 이미지 있잖아요.
*
어쨌든 전할(혹은 기록할) 첫 번째 소식은 이사입니다. 이사, 독립.
퇴근하고 오면 아무도 반겨주는 사람이 없는 텅 빈 집입니다.
일동에서 생활한 3년 동안, 1년 반은 학교 앞 원룸에서 자취를 했고, 1년 반은 관사에서 지냈습니다. 특히 관사에서 지낼 땐 무척 편했던 것 같아요. 그 1년 반 중 1년은 매일 열시에 퇴근하는 생활이어서, 거의 관사에선 잠만 잤지만.. 어쨌든 일동에서 근무할 때는 거의 주말마다 부천의 부모님 집에 왔습니다. 부천의 제 방에는 제 짐이 그대로 있었거든요.
그러다 작년 1년 부모님 집에 들어와 지내다, 이번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복층 오피스텔이고, 아침에만 해가 잠깐 드는 동향입니다.
왜 나왔냐고 많은 분들이 물으시는데요(여기서의 뉘앙스는 왜 나왔는지 '이유가 궁금한 것'이 아닌, '나오지 말고 집에서 다니는 게 낫지 않나'라는 것이 대부분), 이유가 여러가지 있지만, 결국은 제가 편하려고 나온 것 같습니다. 나이도 나이였고, 제가 부모님을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만들지 모른다는 생각도 드니 나오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확실히 혼자 살게 되니 지출은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식비야 그렇다쳐도, 기본으로 나오는 관리비며 한 사람이 생활하는 데 드는 기본적인 생활비도 적지 않는 금액이네요. 지난 2주 동안 내가 왜 필요도 없는 넓은 집(사실 넓은 평수는 아닙니다만, 짐이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없는 저에게는 무척 넓습니다)에 와서 이렇게 돈ㅈㄹ을 하고 있나, 라는 생각도 몇 번 했어요..
입주자들을 위한 피트니스센터가 딸려있는데, 아직 한번도 운동을 못했습니다. 거짓말이 아니고 정말 바쁘거든요. 운동은 커녕 앉아서 쉴 시간조차 귀한 지경이에요. 아, 어젠 모처럼 시간을 내서 자전거를 조금 탔습니다. 동네를 크게 한바퀴 돌아 중앙공원에 갔다가, 부천시청 앞 잔디밭에서 잠깐 허세남 코스프레(커피마시면서 영어원서읽기)를 하고, 동네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왔어요.
*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에서 주관하는 한국어교사양성과정(29기)을 시작했습니다.
단기과정이고요, 6월에 수료하게 됩니다(그때까지 수업결손이 없다면). 수업은 월수금, 18:30 - 22:00(21:05)까지인데, 이거 왔다갔다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네요. 학교에서 네시반에 눈치도 안보고(볼 새가 없음) 나와서,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83번 탑승, 개봉역에서 내려서 651번으로 환승 후 서울대 정문에서 내려 강의동까지 걸어감. 이게 대략 한시간 이십분에서 삼십분 정도 걸리네요. 지하철로 가면 약 5분에서 10분 정도 빠른 것 같은데, 앉아서 갈 수 없는데다 서울대입구역에서 버스를 또 타야하는 게 귀찮기도 해서 당분간은 그냥 버스로 다닐 계획. 진작 면허를 따지 않은 걸 조금 후회했습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지만.
주말엔 역시 언어교육원에서 한국어수업을 듣는 외국학생을 지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 역시 과정의 일부로, 일종의 실습인데요, 제가 맡게 된 학생은 영어가 유창한 일본교포 여학생입니다. 아직 만나보진 못했어요.
이후 가을에 있을 한국어교원자격시험에 응시하게 되고, 합격하면 3급 자격증이 나옵니다. 이 자격이 있으면 교육기관에서 한국어 강의를 할 수 있지만, 이것도 공급이 무척 많은 편이라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네요.
수업은 무척 빡빡한 편입니다. 지금까지 2주 수업을 했는데, 저녁은 모두 빵과 커피로 때워야 했어요. 수업이 아홉시에 끝나는 날엔 집에 오면 거의 열한시, 열시에 끝나는 날이면 거의 열두시가 됩니다. 얼른 씻고 자야 다음 날 (가까스로) 출근할 수 있어요. 빨래나 설겆이 같은 건 집에 조금 일찍 올 수 있는 화요일이나 목요일에. 청소는 그냥 주말에 몰아서 하기로 했습니다.
*
나이를 먹어가며 친구의 수가 적어진다는 생각을 합니다.
친구를 새로 만드는 것보다는, 있는 친구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할 텐데, 이미 있던 친구들이 지방근무를 하게되고, 결혼을 하고, 또 기타 등등의 이유로 소식이 끊기게 되는 나이가 되었네요. 친구를 새로 만들자니 그건 그것대로 피곤한 일. 저는 저대로 나이를 먹어 까탈스러워졌고(아무데서나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지 않고는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없는 일반적인 의미의 한국남자와는 할 이야기가 별로 없습니다), 또 그건 상대방 역시 마찬가지겠지요. 물론 아직은, 굳이 친구를 새로 만들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말하면 외롭지만요.
*
어쨌든 또 새로운 1년, 저에게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의 1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중학교에서 마지막으로 근무하는 해가 될지도 모르고, 긴 독신생활의 첫 해가 될지도 모르죠. 그렇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지치지 않고, 끝까지 천천히 달릴 수 있길 바라고 있습니다. 종종 소식 전할게요. :)
Trackback 0 : Comment 5